
일반적으로 전쟁 영화라고 하면 거대한 전투 장면과 화려한 액션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1917>을 보고 난 뒤 전쟁 영화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는 단 두 명의 병사를 따라가는 2시간짜리 '동행'이자, 기술적 완성도와 인간적 서사가 충돌하는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샘 멘데스 감독이 자신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H. 멘데스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든 이 작품은,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을 배경으로 1,600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두 병사의 사투를 그립니다.
1917, 원 컨티뉴어스 샷이 만들어낸 압도적 몰입감
<1917>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 전체가 하나의 끊김 없는 쇼트처럼 보이게 만드는 '원 컨티뉴어스 샷(One Continuous Shot)' 기법입니다. 여기서 원 컨티뉴어스 샷이란 편집점을 교묘하게 숨겨 마치 카메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촬영 기법을 말합니다. 실제로는 여러 개의 롱테이크를 정교하게 이어붙인 것이지만, 관객은 그 경계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라는 두 병사 옆에서 함께 걷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쟁 영화는 편집을 통해 여러 시점을 교차하며 전황을 보여주지만, <1917>은 오직 이 두 병사의 시야에만 집중합니다. 그들이 진흙탕 참호를 기어가면 저도 숨이 막혔고, 독일군 저격수의 총탄이 날아올 때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습니다. American Cinematographer의 분석에 따르면,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는 자연광만을 활용하거나 정밀하게 설계된 조명 리그를 통해 이 긴 호흡의 촬영을 완성했습니다(출처: American Cinematographer). 특히 야간 조명탄 장면에서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영상미는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하나의 시각 예술로 승화되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몰입감은 극장의 큰 스크린과 사운드 시스템 없이는 절대 재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 사이의 간극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17년 4월은 독일군이 '힌덴부르크 선(Hindenburg Line)'으로 전략적 후퇴를 감행했던 시기입니다. 여기서 힌덴부르크 선이란 독일군이 서부전선에 구축한 방어선을 뜻하며, 이들은 후퇴하면서 도로와 다리, 철도를 파괴하고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알베리히 작전(Operation Alberich)'을 수행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당시 영국군은 유선 통신뿐만 아니라 전서구, 신호등, 무선 기기 등 다양한 통신 수단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모든 통신망이 두절되어 단 두 명의 병사에게만 전령 임무가 맡겨지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역사학자 제레미 베니스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영국군의 통신 체계가 영화에서 묘사된 것만큼 무력하지는 않았습니다(출처: Imperial War Museums). 제 생각에 이 부분은 역사적 정확성보다는 극적 긴장감을 우선시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정말 두 명만 보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스코필드가 무인지대를 가로질러 달리는 클라이맥스 장면을 보는 순간 그런 의심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때로는 역사적 완벽함보다 영화적 진실이 주는 감동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화려한 기술미에 가려진 서사의 단조로움
솔직히 이 영화에 찬사만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서사 구조가 마치 1인칭 슈팅 게임(First-Person Shooter, FPS)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방식과 너무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FPS란 플레이어가 주인공의 시점에서 적을 사격하며 진행하는 게임 장르를 말합니다. 영화 속 사건들을 나열해 보면 이런 패턴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 독일군 참호 탈출
- 저격수와의 대결
- 불타는 마을 통과
- 강물에 휩쓸리기
- 최종 목적지 도달
각 시퀀스는 시각적으로 경이롭지만, 인물의 내면적 변화나 전쟁의 근본적인 모순을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서사적 공간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The New Yorker의 비평가 리처드 브로디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인물의 감정보다 앞서 나간다"며 화려한 기술이 때로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전시용 장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출처: The New Yorker). 저 역시 스코필드의 고통에는 깊이 공감했지만, 그가 전쟁 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전쟁이 그에게 어떤 근본적인 파괴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조금 더 담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숭고한 헛수고의 미학과 인간성의 가치
영화 후반부, 스코필드가 마침내 맥켄지 대령에게 명령서를 전달했을 때 대령이 뱉은 말은 뼈아픈 통찰을 줍니다. "오늘을 멈춰도 내일이면 또 다른 명령이 내려올 것이고, 결국 전쟁은 끝까지 가야 끝난다"는 그의 말은 스코필드의 처절했던 사투가 거대한 전쟁사 안에서는 아주 작은 일시정지 버튼에 불과했음을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필드가 나무 밑에서 가족의 사진을 보며 눈을 감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는 없어도, 단 1,600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던진 한 개인의 용기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전쟁 영화는 승패나 전략을 다루지만, <1917>은 그 속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한 남자의 뒤태를 묵묵히 따라갑니다. 제 생각에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원테이크 기법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타인을 위해 달릴 수 있는 인간의 숭고함을 증명한 데 있습니다. <1917>은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를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비록 서사의 깊이보다는 체험의 강도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지만,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가 포착한 전장의 빛과 어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적 서사가 됩니다. 화려한 기술 속에 숨겨진 투박하고 진실된 인간의 얼굴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1917(%EC%98%81%ED%99%94), https://namu.wiki/w/1917(%EC%98%81%ED%99%94)/%EC%A4%84%EA%B1%B0%EB%A6%AC, https://www.youtube.com/watch?v=UAiuTVIta34, Mendes, A. H. (2002). Autobiography of Alfred H. Mendes., American Cinematographer (2020). "1917: Inside the One-Shot War Epic with Roger Deakins.", Banning, J. (2020). "The History Behind 1917: Was it possible?", The New Yorker (2019). "1917 Is a Tech Exercise in Search of a Movie.", The Guardian (2019). "1917 Review – Sam Mendes's visceral, single-take First World War drama.", Imperial War Museums (IWM)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