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10.26 사건 '이후'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습니다. 역사 교과서에서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은 배웠지만, 그 뒤에 벌어진 16일간의 졸속 재판이나 박흥주 대령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2024년 8월 14일 개봉한 추창민 감독의 <행복의 나라>는 바로 그 '잊혀진 재판'을 법정 드라마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조정석이 연기한 변호사 정인후와 이선균이 마지막으로 남긴 박태주 대령의 이야기는, 권력 앞에 무력했던 법의 민낯을 보여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의 존엄을 기록합니다.
법정이 아닌 권력의 연극무대, 10.26 재판의 실체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밤, 중앙정보부장 김영일(김재규 모티브)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사건 직후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핵심 인물은 김영일의 부하였던 박태주 대령인데, 그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대통령 경호원들을 제압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문제는 이 행동이 '내란의 사전 공모'인지, 아니면 '위압에 의한 명령 복종'인지가 재판의 최대 쟁점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재판이 재판답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합동수사본부장 전상두(전두환 모티브)는 재판을 실시간으로 감청하며 재판부에 쪽지를 건넵니다. 이건 사실상 사법부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위죠. 여기서 '사법부 독립'이란 행정부나 입법부, 그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법에 따라 판결할 수 있는 원칙을 의미합니다(출처: 대한민국 법원). 하지만 영화 속 1979년 법정에서 이 원칙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변호사 정인후는 처음엔 출세를 위해 이 사건을 맡았지만, 점차 박태주의 결백함과 재판의 부당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법정에서 외치는 "이럴 거면 재판은 왜 하는 겁니까!"라는 대사는, 당시 군사정권 하에서 법이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씨네21 평론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사건 자체의 자극적인 재현보다 그 속에 놓인 '인간'의 얼굴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군법회의'라는 특수한 재판 시스템을 다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군법회의란 군인 신분의 피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군사 법정을 의미하는데, 일반 법정과 달리 단 한 번의 선고로 형이 확정되어 항소나 상고가 불가능합니다. 박태주는 현역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그 결과 변호인단이 시간을 끌며 여론을 뒤집을 기회조차 박탈당했습니다. 1979년 당시 군사재판법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었습니다(출처: 국가기록원). 일각에서는 박태주가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니 무죄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니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지만, 그 명령이 명백히 불법적인 내살 행위라면 복종할 의무가 있을까요? 이건 지금도 논쟁적인 지점입니다.
행복의 나라 속 이선균의 마지막 연기, 그리고 영화가 남긴 질문들
박태주를 연기한 이선균 배우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2023년 12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 말미에 "우리는 이선균과 함께 했음을 기억합니다"라는 추모 자막이 올라갈 때, 극장에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가 연기한 박태주는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군인이었고, 그 모습이 배우 본인의 삶과 겹쳐지면서 묘한 울림을 남겼습니다. 제작사 파파스필름의 이준택 대표는 2011년 박흥주 대령의 유서를 보고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유서에는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줄 날이 있을 거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실제로 박흥주 대령은 달동네 단칸방에서 청렴하게 살다가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그의 개인사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그리지 않으면서도, 시대가 한 인간에게 강요한 비극을 담담히 기록합니다. 다만 저는 이 영화가 지나치게 선악 구도를 단순화했다는 비판에도 일부 공감합니다. 전상두로 대변되는 신군부는 절대악으로, 정인후와 박태주는 거의 절대선에 가깝게 그려지거든요. 물론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역사가 가진 복잡한 맥락을 담아내기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종종 지적하듯, 역사적 실화를 다룰 때 인물을 지나치게 기능적으로 배치하면 서사의 깊이가 얕아질 위험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정인후가 전상두를 골프장에서 대면하는 시퀀스였습니다. 여기서 정인후는 "서울 거리에 깔린 탱크들, 저게 진짜 내란이야"라고 외치며 12.12 군사반란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이 장면은 실제로는 없었던 영화적 창작이지만, 관객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다만 일부 평론가들은 이 장면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감정에 호소한다는 지적도 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영화 제목인 '행복의 나라'는 한대수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데, 극 중 인물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금 우리에겐 당연한 것인지 묻게 됩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과연 박흥주 대령과 같은 희생 위에 서 있는 '행복의 나라'에 살고 있을까요? 영화는 710,518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270만 명)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가치를 숫자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극장을 나서며 든 생각은, 이 영화가 10.26이라는 사건을 넘어 '법 앞에 선 개인의 존엄'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건드렸다는 점이었습니다. <행복의 나라>는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후반부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픽션 가미가 과하다는 비판도 타당합니다. 하지만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열연과 조정석의 묵직한 연기, 그리고 유재명이 창조한 서늘한 악역은 영화를 끝까지 붙잡는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법이 권력의 시녀가 될 때, 개인은 어떻게 존엄을 지킬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저는 한참을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의 본성은 반복된다고 하잖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부당한 권력 앞에서 싸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D%96%89%EB%B3%B5%EC%9D%98%20%EB%82%98%EB%9D%BC, https://www.youtube.com/watch?v=JR3ac-av8Bw, https://www.cine21.com, https://www.scourt.go.kr, https://www.archives.go.kr, https://www.kobi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