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파묘 (오컬트, 땅 속의 기억, 호불호)

by heeya97 2026. 3. 7.
반응형

파묘

솔직히 저는 〈파묘〉를 보기 전까지 오컬트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귀신 나오는 영화"라고만 생각했던 제게, 무당·풍수사·장의사가 팀을 이뤄 움직이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그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굿의 동선, 땅을 읽는 방식, 관을 다루는 손끝까지 하나하나가 "대충 그럴듯한 설정"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가 오래 들여다보고 정리한 현실처럼 보였거든요. 디테일이 쌓이니까, 관객인 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믿고 따라가게 되더라구요. 제 인생 첫 오컬트 영화가 이렇게 시작된 겁니다.

파묘 라는 오컬트 영화는 "그냥 무서운 영화"가 아니었을까요?

〈파묘〉가 단순히 점프스케어로 관객을 놀래키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저는 초반 30분 안에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공포를 "절차"로 만들어냅니다. 무당 화림(김고은)이 굿판을 벌이는 장면에서, 칼을 땅에 내던지고 다시 잡아 들고 허벅지에 대고 긋는 동작 하나하나가 즉흥이 아니라 정확한 목적과 쓰임새를 가진 의례라는 걸 보여줍니다. 여기서 "의례(儀禮)"란 종교나 무속 신앙에서 신을 모시거나 악령을 쫓기 위해 정해진 순서와 형식에 따라 행하는 예식을 의미합니다(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이 묘터의 흙을 맛보고 표정을 찌푸리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명당의 흙은 구수한 된장 같은 맛이 난다는데, 이 악지(惡地)는 시커멓고 칙칙한 데다 맛보자마자 뱉어버릴 정도였죠. 여기서 악지란 풍수지리상 기운이 나쁘고 사람이 살거나 묘를 쓰면 흉사가 생긴다고 여겨지는 땅을 뜻합니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왜 무서운지"의 논리를 초반에 꽤 설득력 있게 만들어냅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장의사 고영근(유해진)이 관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관 속에 손을 넣어 물이 차지 않았는지, 유해 상태는 깨끗한지 확인하는 모습이 마치 수십 년 경력의 장인이 자재를 검수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들은 단순히 "귀신을 쫓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성으로 위험한 현장을 관리하는 실무자처럼 그려집니다. 그래서 관객은 "저 사람들 믿어도 되나?" 하는 의심 대신, "저 사람들은 저 세계의 프로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죠. 연합뉴스 영어판 리뷰도 중반까지는 보이지 않는 힘을 둘러싼 긴장감을 몰입감 있게 끌어올린다고 평가했습니다(출처: Yonhap News Agency). 저 역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굿판의 오방색 천, 묘터의 습한 공기, 관을 다루는 소리 같은 것들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어요. 이 영화는 분위기만 무섭게 잡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공포로 바꾸더라구요.

이 영화가 건드린 건 귀신이 아니라 "땅 속의 기억"이었습니다

〈파묘〉의 영어 제목은 'Exhuma'입니다. '발굴하다', '파내다'라는 뜻이죠.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 제목이 단순히 무덤을 파는 행위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덮어두고 묻어둔 무언가를 다시 꺼내는 행위 전체를 의미한다고 느꼈습니다. 영화 속 박지용 집안의 묘는 단순히 조상의 무덤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층위를 상징하는 장소로 기능합니다. 친일 고관대작의 묘가 악지에 묻혀 있고, 그 아래에는 더 험한 것이 첩장(疊葬)돼 있었죠. 여기서 첩장이란 명당 자리에 이미 임자가 있을 경우, 그곳의 기운을 나누어 받고자 몰래 같이 안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BFI(Sight & Sound) 리뷰는 이 작품을 산 정상의 무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여러 층위의 기괴함을 캐내는 "밀도 높은 민속(folkloric) 호러"로 평가했습니다(출처: British Film Institute). 저도 이 지적에 공감합니다. 영화는 무덤을 파는 장면을 통해 조상의 원한, 역사적 트라우마,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죽음을 한 층 한 층 드러내거든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에서 따왔다는 점입니다. 김상덕, 이화림, 고영근, 윤봉길. 처음엔 그냥 이름이 조금 특이하네 정도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시 떠올려 보니 그게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영화가 숨겨둔 하나의 결처럼 느껴졌어요. '묻힌 것'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우리 역사 속에서 잊히거나 제대로 애도받지 못한 이름들을 슬쩍 올려놓는 방식이랄까… 영화가 다루는 공포가 귀신의 얼굴만이 아니라, 땅과 기억과 시간에 엉겨 붙은 무언가에서 온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파묘〉가 단순히 "무서운 영화"가 아니라, "불편한 영화"였다고 느꼈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박근현의 악령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여우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는 왜 그곳에 오니를 묻었는지' 같은 질문들이 자꾸 떠올랐거든요.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장 성공한 공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후반부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초반의 절차적 긴장과 팀플레이가 탁월했던 만큼, 후반부는 상징과 세계관이 과밀해지면서 공포의 순도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로튼토마토에 인용된 일부 리뷰도 후반부가 과도하게 복잡해진다는 평가를 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영화가 던지고 싶은 기호(풍수, 무속, 역사적 은유, 원한, 악의 계보)가 많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공포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설명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어요. 상징이 많아질수록 관객은 해석 게임에 들어가고, 그러면 공포의 순수한 압박이 조금 희석되거든요. 제가 특히 그렇게 느낀 건, 오니(鬼)가 등장한 이후였습니다. 오니란 일본 민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괴물로, 뿔이 달리고 엄청난 힘을 가진 초자연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 오니를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논리로 설명하려 하는데, 여기서 음양오행이란 세상 만물이 음과 양, 그리고 불(火)·물(水)·나무(木)·쇠(金)·흙(土)의 다섯 가지 성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상생하거나 상극한다는 동양 철학의 개념입니다. 물론 이 논리는 영화의 세계관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관객이 "왜 무서운지"를 체감하기보다 "이게 무슨 원리인지"를 이해하는 데 집중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오니가 땅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공포보다 "아, 이제 음양오행으로 해결하려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공포는 종종 비어 있는 부분에서 자라는데, 〈파묘〉는 그 빈틈을 촘촘한 설정으로 메워버리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한국형 오컬트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큰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흥행 면에서도 2024년 한국 영화 중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냈고,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오컬트 장르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해외 매체들도 이 성과를 주요하게 다뤘습니다(출처: Screen Daily). 주요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초반의 절차적 긴장과 팀플레이가 탁월했습니다
  • 한국적 오컬트의 질감을 설득력 있게 구축했습니다
  • 후반부는 상징과 세계관이 과밀해지면서 공포의 순도가 조금 희미해졌습니다
  • 그럼에도 천만 관객 돌파라는 성과를 통해 한국형 오컬트의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파묘〉는 제게 오컬트 장르에 대한 첫인상을 완전히 바꿔준 영화였습니다. 괴상하고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 디테일과 규칙, 그리고 묘하게 현실 같은 공기감으로 관객을 설득해버리는 영화였습니다. 무서워서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끝나고 나서도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하면서 장면들이 자꾸 떠오르는 영화였어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히 오컬트가 아니라, 땅 속에 묻힌 이야기를 꺼내는 방식으로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건드리는 영화였다고 기억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D%8C%8C%EB%AC%98(%EC%98%81%ED%99%94), https://namu.wiki/w/%ED%8C%8C%EB%AC%98(%EC%98%81%ED%99%94)/%EB%93%B1%EC%9E%A5%EC%9D%B8%EB%AC%BC, https://namu.wiki/w/%ED%8C%8C%EB%AC%98(%EC%98%81%ED%99%94)/%EC%A4%84%EA%B1%B0%EB%A6%AC, https://www.youtube.com/watch?v=JRwpAo_B7LY, https://en.yna.co.kr/view/AEN20240223006600315, https://www.bfi.org.uk/sight-and-sound/reviews/exhuma-korean-occult-horror-excavates-multiple-layers-weirdness, https://www.rottentomatoes.com/m/exhuma, https://www.screendaily.com/news/exhuma-tops-landmark-10-million-admissions-in-south-korea/5191885.article, https://deadline.com/2024/03/korea-horror-film-exhuma-9-million-admissions-1235861008, https://www.koreanfilm.or.kr/eng/news/news.jsp?blbdComCd=601006&mode=VIEW&seq=6119, https://folkency.nfm.go.kr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