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지진으로 서울이 폐허가 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생존을 위해 결속한 주민들이 점차 배제와 폭력의 논리로 치달으며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영화의 외피를 쓴 사회 우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생존 서사를 넘어, 공동체가 어떻게 집단 이기주의와 폭력의 온상이 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해부합니다.
생존 공동체의 폭력성: 질서라는 이름의 배제 시스템
영화는 2023년 12월, 영하 26도의 혹한 속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서울 전역이 파괴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온 도시가 콘크리트 더미로 변한 가운데 홀로 우뚝 선 황궁 아파트 103동은 생존자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자 탐욕의 대상이 됩니다. 초반부터 드러나는 핵심은 바로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명제입니다. 이 구호는 언뜻 공동체 결속의 긍정적 표현처럼 들리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배제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됩니다. 주민 회의에서 외부인 수용 여부를 두고 투표가 진행되고, 하얀 바둑돌(추방)이 검은 바둑돌(수용)을 압도합니다. 이 장면은 민주적 절차라는 형식을 통해 폭력이 합법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김영탁 대표의 지휘 아래 외부인들은 무력으로 쫓겨나고, 주민들은 '우리'의 안전을 지켰다는 집단적 안도감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이 안도감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며, 곧 더 큰 폭력의 씨앗이 됩니다. 방범대가 조직되고 군필자 위주로 선발되는 과정에서 이미 능력주의와 배제의 논리가 작동합니다. 809호의 도균은 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로 방범대 활동을 거부당하고, 이는 나중에 그가 외부인을 숨겨주는 계기가 됩니다. 방범대는 식량 확보를 위해 슈퍼마켓을 약탈하고, 산탄총을 든 남자를 제압한 뒤 그의 가족이 우는 것을 외면한 채 모든 물자를 가져갑니다. 이 장면은 생존이라는 명분이 어떻게 약탈과 폭력을 정당화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아파트 잔치 장면은 이러한 폭력성이 축제로 승화되는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주민들은 약탈한 식량으로 연회를 열고, 영탁이 윤수일의 '아파트'를 부르며 단합을 다집니다. 그러나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면에는 슈퍼마켓 주인의 절규와 쫓겨난 외부인들의 고통이 깔려 있습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당신도 저 잔치에 참여했을 것인가?"
내부자와 외부인의 경계: 소유와 자격의 정치학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선은 '입주민'과 '외부인'입니다. 이 경계는 단순히 공간적 위치가 아니라, 생존할 자격과 인간으로 대우받을 권리를 가르는 절대적 기준이 됩니다.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비하합니다. 이 은유는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상대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하는 언어적 장치입니다. 흥미롭게도 영화 초반 아파트 로비에서 바퀴벌레가 우르르 나오자 주민들이 기겁하며 밟아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나중에 외부인들을 대하는 주민들의 태도를 예시하는 복선입니다. 생명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고 제거하는 행위가, 결국 다른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경계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자의적인지도 보여줍니다. 명화의 집에 머물던 모자는 처음엔 외부인으로 들어왔지만 명화의 선의로 보호받습니다. 반면 혜원은 황궁 아파트 903호의 정식 거주민임에도 지진 당시 밖에 있었다는 이유로 귀신 같은 몰골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입주민으로 인정받지만, 동시에 '제대로 기여하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찍혀 주민들의 비난을 받습니다. 가장 극적인 아이러니는 김영탁의 정체입니다. 그는 사실 택시기사 모세범으로, 아파트 사기를 당한 뒤 진짜 김영탁을 찾아왔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그의 신분을 가로챈 인물입니다. 즉, 주민 대표이자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던 인물 자신이 가장 전형적인 '외부인'이었던 것입니다. 명화와 혜원이 진짜 영탁의 시체를 김치냉장고에서 발견하고 그의 정체가 폭로되는 순간, 내부자와 외부인의 경계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유동적인지 드러납니다. 도균의 투신 자살 장면은 이러한 경계의 폭력성을 극한으로 보여줍니다. 외부인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배신자 낙인이 찍힌 도균은 "잘못했습니다"를 외치며 난간에서 뛰어내립니다. 주민들은 그의 시체를 불태우면서도 연민보다는 "갈치구이 냄새 같다"는 조롱을 던집니다. 이 장면은 공동체가 어떻게 한 인간의 존엄을 완전히 박탈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충격적인 순간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재난 속 인간성의 붕괴: 선택과 타협의 연쇄
영화는 재난이라는 극한 상황이 인간의 본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고 말합니다. 민성은 초반 지진 당시 트럭에 깔린 여성을 구하려 애쓰지만, 결국 자신의 안전을 위해 포기하고 차에 탑승합니다. 이 선택은 그가 나중에 아파트에서 보여줄 행동들의 원형입니다. 명화와 함께 황도 통조림을 몰래 먹으려던 장면, 외부인 색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 영탁 앞에 무릎 꿇고 충성을 다짐하는 장면까지, 민성은 계속해서 타협합니다. 명화는 영화 내내 양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외부인 모자를 집에 들이고, 도균에게 몰래 식량을 전달하며, 혜원의 말을 믿고 진실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그녀의 선의는 아파트 내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습니다. 명화가 도균을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질 뻔했을 때, 민성은 "여기서 쫓겨나면 우리 둘 다 죽는다"며 그녀를 설득합니다. 이 대사는 생존이 윤리를 압도하는 순간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김영탁(모세범)의 캐릭터는 이 영화의 가장 복잡한 층위를 형성합니다. 그는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앉았고, 진짜 영탁에게 돈을 돌려받으려다 우발적 살인을 저지릅니다. 지진이라는 재난은 그에게 도망칠 곳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고, 그는 놀랍게도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불 속에 뛰어들어 화재를 진압하고, 외부인의 공격에 맞서 주민들을 지키며, 방범대를 조직해 식량을 확보합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과잉 충성에서 비롯됩니다. 영탁이 혜원을 낭떠러지로 던지는 장면은 그의 인간성이 완전히 붕괴되는 순간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그는 주저 없이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외부인들의 습격이 시작되고, 영탁은 다시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이 아이러니는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을 응축합니다. "선한 행동이 악한 동기에서 나올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행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황궁아파트 전투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모든 갈등이 폭발하는 지점입니다. 소장의 배신으로 외부인들이 쳐들어오고, 사제폭탄과 무력 충돌로 아파트는 아수라장이 됩니다. 영탁은 끝까지 주민들을 지키려 싸우다 중상을 입고, 902호로 올라가 가족 사진을 보며 죽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외치는 "남의 집에 신발 신고 들어오냐"는 대사는, 그가 끝까지 집착한 것이 공동체가 아니라 '소유'였음을 보여줍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이후 생존 공동체가 어떻게 배제와 폭력의 시스템으로 전락하는지 냉정하게 기록합니다. 내부자와 외부인이라는 자의적 경계는 인간을 바퀴벌레로 취급하는 언어로 이어지고, 생존이라는 절대 명제 앞에서 인간성은 너무나 쉽게 무너집니다. 민성이 명화에게 샤넬 머리핀을 선물하고 죽는 장면, 명화가 쓰러진 아파트 공동체에서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답하는 장면은, 악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함 속에 숨어 있음을 말합니다. 결국 햇빛이 비추는 쓰러진 아파트와 어둠에 잠긴 우뚝 선 황궁 아파트는, 진정한 유토피아가 소유가 아니라 연대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나무위키 - 콘크리트 유토피아
https://namu.wiki/w/%EC%BD%98%ED%81%AC%EB%A6%AC%ED%8A%B8%20%EC%9C%A0%ED%86%A0%ED%94%BC%EC%9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