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그저 화려한 사기극을 다룬 오락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비행기 기장과 의사, 변호사를 사칭하며 FBI를 농락하는 장면들이 워낙 경쾌하게 펼쳐져서, 범죄 행위라기보다는 한 편의 통쾌한 모험담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드라마가 아니라, 부모의 이혼으로 산산조각 난 한 소년의 처절한 생존기였다는 사실을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1960년대 실존 인물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가족이라는 안전망을 잃은 17세 소년이 어떻게 미국 전역을 떠돌며 자신의 정체성을 위조해 나갔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화려한 사기극 뒤에 숨은 소년의 외로움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가 사기를 시작한 건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은 부모님이 이혼 서류에 사인하는 법률사무소 장면이었습니다. 변호사는 프랭크에게 "아빠와 엄마 중 누구와 살지 결정해"라고 묻지만, 16세 소년에게 그건 선택이 아니라 고문에 가까웠죠. 결국 프랭크는 아버지가 준 25달러짜리 수표책만 챙겨 집을 나옵니다. 여기서 프랭크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수표 위조(Check Fraud)였습니다. 수표 위조란 타인의 명의나 계좌 정보를 도용해 가짜 수표를 만들어 현금화하는 범죄 행위를 말합니다. 1960년대 미국은 아직 전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수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데 평균 2주가 걸렸고, 프랭크는 바로 이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었습니다(출처: FBI). 그는 MICR(Magnetic Ink Character Recognition, 자기 잉크 문자 인식) 인코더라는 장비를 경매로 구입해 수표 하단의 은행 계좌번호를 정교하게 인쇄했습니다. MICR이란 은행이 수표를 자동으로 분류하고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 잉크 인식 기술로, 당시에는 이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진짜처럼 보이는 수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가 진짜 원했던 건 돈이 아니라 가족의 재결합이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프랭크의 아버지 프랭크 시니어(크리스토퍼 워컨 분)는 클럽 시상식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생쥐 두 마리가 크림통에 빠졌습니다. 한 마리는 포기하고 익사했지만, 다른 한 마리는 끝까지 발버둥쳐서 크림을 버터로 만들어 탈출했습니다." 프랭크는 이 이야기를 평생 기억하며 자신도 두 번째 생쥐가 되려 했습니다. 제 생각엔 프랭크가 팬암 항공사 부기장, 의사, 변호사를 차례로 사칭한 이유도 결국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프랭크는 범행 중간중간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며 "저 이제 부기장이 됐어요",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요"라고 자랑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씁쓸했던 장면은 프랭크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을 쫓는 FBI 요원 칼 핸래티(톰 행크스 분)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었습니다. 세계를 떠돌며 수백만 달러를 벌었지만, 정작 그 날 밤 전화할 사람은 자신을 잡으려는 수사관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프랭크의 고독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실화와 영화 사이, 그리고 스필버그의 선택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프랭크 애버그네일에 대해 찾아봤는데, 솔직히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영화에서 프랭크는 루이지애나 변호사 시험을 2주 공부해서 통과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루이지애나 법무부에서 그런 기록이 전혀 없다고 공식 발표했거든요. 또 영화에서는 프랭크가 하버드 의대 졸업장을 위조해 병원 응급실 책임자로 일했다고 나오지만, 이것 역시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출처: The New York Times).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기 영화(Biographical Film)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각색되거나 미화되었다는 비판이 있는 이유입니다. 전기 영화란 실존 인물의 생애나 특정 시기를 재구성한 영화 장르를 말하는데, 사실성보다 극적 재미를 우선시할 경우 윤리적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스필버그의 연출 선택을 이해합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니까요. 스필버그는 프랭크의 범죄 행각을 경쾌한 재즈 음악과 빠른 편집으로 포장해 마치 60년대 케이퍼 무비(Caper Movie, 범죄 계획과 실행 과정을 유쾌하게 다룬 장르)처럼 연출했습니다. 특히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애니메이션으로 프랭크가 여러 직업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 전체의 톤을 경쾌하게 설정합니다. 씨네21의 평론에서도 지적했듯이, 이 영화는 "범죄의 결과"보다 "범죄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관객이 프랭크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연출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영화는 프랭크가 속인 피해자들의 고통을 거의 보여주지 않습니다. 은행 직원들이 위조 수표를 받아들이는 장면은 나오지만, 그로 인해 손실을 입은 은행이나 개인들의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죠. 제가 보기에 이건 범죄의 미화(Glorification of Crime)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범죄의 미화란 불법 행위를 매력적이거나 정당한 것처럼 묘사해 관객의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면 프랭크를 "천재적인 사기꾼"으로 기억하게 되지, "피해자를 양산한 범죄자"로 기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 미화를 넘어선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진짜 주제는 사기가 아니라 정체성(Identity)입니다. 프랭크는 팬암 기장 행세를 할 때 배리 앨런이라는 가명을 썼는데, 이건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 플래시의 본명입니다. 칼 요원이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범인이 만화책을 읽는 미성년자"라는 걸 깨닫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프랭크는 어른 행세를 하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이였던 거죠. 영화 말미에 프랭크는 FBI에서 위조 수표 감별사로 일하게 됩니다. 그가 만든 보안 시스템은 실제로 금융계에 혁명을 일으켜 연간 수백만 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칼 요원이 "어떻게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느냐"고 묻자 프랭크는 이제야 진실을 말합니다. "2주 동안 공부했어요." 이 장면에서 프랭크는 더 이상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가면을 벗고도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았으니까요.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입니다. 화려한 사기극의 껍데기를 벗기면, 결국 남는 건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프랭크는 수많은 직업을 사칭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으로 살아본 적은 없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프랭크가 FBI 사무실에서 위조 수표를 감별하며 짓는 씁쓸한 미소는, 그가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았지만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잃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통해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단면도 보여줍니다. 당시는 제복과 학위증만 있으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오히려 사기꾼에게 기회를 제공한 셈이죠. 지금도 보이스피싱이나 딥페이크 사기가 성행하는 걸 보면, 인간의 이런 약점은 여전히 악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제작비 5,20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3억 5,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소년미와 톰 행크스의 중후한 연기가 만나 최고의 앙상블을 보여줬고, 존 윌리엄스의 재즈 스코어는 영화의 경쾌함을 한층 더 살렸습니다. 영화는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과 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프랭크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 빼고는 다 호구들(suckers)이야." 아버지는 이 말로 아들의 범죄를 정당화했지만, 정작 진짜 호구는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 프랭크 자신이 아니었을까요. 영화의 영어 제목 "Catch Me If You Can"은 도발처럼 들리지만, 저는 이게 사실 "제발 누가 나를 잡아줘"라는 구조 신호였다고 생각합니다. 프랭크는 결국 칼 요원에게 잡혀서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으니까요. 유쾌한 사기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가족의 해체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표류하던 한 소년의 슬픈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화려한 범죄 뒤에 남은 건 결국 외로움과 상실뿐이었다는 사실, 그게 이 영화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BA%90%EC%B9%98%20%EB%AF%B8%20%EC%9D%B4%ED%94%84%20%EC%9C%A0%20%EC%BA%94, https://www.youtube.com/watch?v=8TOah4c9dhI, cine21.com, youtube.com/@B-Movie-Critic, Frank W. Abagnale: 실화 기반 자서전 Catch Me If You Can (1980), rogerebert.com, 출처: The New York Times, 출처: F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