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조선 시대 좀비'라는 한 줄짜리 설명만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 저도 그랬습니다. 2018년 가을, 극장 포스터에서 갓을 쓴 현빈이 칼을 뽑아 든 장면을 봤을 때 망설임 없이 예매 버튼을 눌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21분 뒤, 극장을 나서며 꽤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창궐 속 야귀라는 크리처, 신선했는가 어설펐는가
영화가 내세운 '야귀(夜鬼)'는 단순한 좀비와는 다릅니다. 야귀는 밤에만 활동하며, 햇빛에 노출되면 본능적으로 어둠 속으로 피하는 존재입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는 솔직히 꽤 흥미롭다고 느꼈습니다. 일반적인 좀비물에서 흔히 쓰이는 감염 메커니즘에 흡혈귀적 특성인 광선 기피 본능을 결합한 방식이었거든요. 여기서 '감염 메커니즘'이란 병원체가 숙주에서 숙주로 전파되는 방식과 그 속도, 증상의 발현 순서를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좀비물에서 이 설정이 얼마나 일관성 있게 유지되느냐는 장르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이 감염 메커니즘이 영화 내내 중구난방이라는 점입니다. 초반부에 야귀에 물린 군졸은 수십 시간에 걸쳐 천천히 야귀로 변합니다. 그런데 후반부 궁궐 연회 장면에서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수백 명이 동시에 야귀가 되어버립니다. 저처럼 좀비물을 꽤 챙겨 봐온 사람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설정 자체를 포기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도 짚고 넘어갈 만합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인물 배치, 조명, 세트, 색채를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연출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에서 단청이 화려한 궁궐 기둥 아래로 하얀 소복 차림의 야귀들이 몰려드는 장면은 미장센 측면에서 분명히 성공적이었습니다. 동양적 공포의 미학과 좀비 장르를 결합한 그 이미지만큼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액션 연출에서도 이 영화만의 강점이 있습니다. 주인공 이청이 장검으로 야귀들을 연이어 베어 넘기는 장면은 기존 좀비물에서 보기 힘들었던 '검술 액션'의 쾌감을 선사합니다. 다만 좀비물 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주인공이 수십 마리의 야귀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단 한 번도 손목이나 팔을 물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부산행이나 월드워Z 같은 작품들이 생존자의 손 보호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묘사했는지를 생각하면, 이 장면이 얼마나 장르 문법에서 벗어난 연출인지 바로 보입니다. 야귀 설정의 주요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초반과 후반의 감염 속도가 수십 시간에서 수 초로 일관성 없이 변함
- 햇빛에 약하다는 설정을 야귀로 변한 소용 조씨가 정면으로 위반함
- 물린 부위를 절단하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설정이 후반부에서 사실상 무시됨
- 김자준이 약재 하나로 반(半)야귀 상태로 각성하는 과정에 아무런 전제 설명 없음
장르 정체성 논란, 저는 이렇게 봤습니다
이 영화를 두고 "좀비가 나오는 영화이지, 좀비 영화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엔 다소 과한 비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다시 곱씹어 보면 상당히 정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비 아포칼립스물(zombie apocalypse fiction)이란 감염자가 통제 불능 상태로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생존자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다루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핵심 긴장감은 '언제 몰려올지 모르는 감염자들로부터 오는 공포'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창궐의 대화 중심은 시종일관 "누가 왕이 되는가"에 쏠려 있습니다. 야귀는 권력 다툼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고, 그 결과 장르 고유의 긴장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야귀를 권력 욕망의 메타포(metaphor)로 활용하려 했다는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메타포란 하나의 개념을 전혀 다른 대상에 빗대어 그 본질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입니다. 병조판서 김자준이 스스로 야귀가 되는 결말은 "권력의 끝은 괴물"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의도는 읽힙니다. 문제는 그 의도를 실현할 만큼 서사가 충분히 촘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빌런인 김자준은 장동건이라는 좋은 배우가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동기가 너무 단선적입니다. '왕이 되고 싶어서' 나라를 통째로 야귀 떼에 넘기겠다는 계획은, 명분과 정통성을 중시했던 조선 시대의 사회 구조를 감안하면 설득력이 크게 떨어집니다. 제 경험상 영화에서 빌런의 동기가 얕으면 주인공의 매력도 함께 가라앉는 경우가 많은데, 창궐이 딱 그 경우였습니다. 반면 조우진 배우가 연기한 박을룡 종사관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야귀에 물린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려는 모습은, 주인공 이청의 영웅 서사보다 훨씬 더 감정선이 뚜렷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BIS) 집계에 따르면 창궐의 최종 관객수는 약 159만 명으로, 손익분기점이었던 380만 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제작비 170억 원을 쏟아부은 블록버스터가 이런 성적을 거둔 데는, 초반 관람 후 이어진 온라인상의 혹평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씨네21의 평론가들도 이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는데, "장르적 정체성의 부재"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전개"를 핵심 문제로 꼽았습니다(출처: 씨네21).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지점이 정확히 그 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부산행이 현대 배경의 K좀비 장르를 열었다면, 창궐은 그 장르가 사극이라는 공간에서도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스크린으로 증명했습니다. 이후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이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창궐 같은 선행 시도들이 쌓아올린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창궐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조선 좀비'라는 발상만큼 서사와 장르 설정을 꼼꼼히 다뤘다면 어땠을까. 화려한 검술 액션과 궁궐이라는 공간의 압박감은 분명히 훌륭한 재료였습니다. 같은 설정으로 킹덤이 이후에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보면, 창궐이 무엇을 놓쳤는지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창궐 이후 K좀비 장르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부산행과 킹덤을 순서대로 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비교해서 보면 장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가 훨씬 잘 보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B0%BD%EA%B6%90(%EC%98%81%ED%99%94), https://www.youtube.com/watch?v=kbLLopDEWcI, http://www.cine21.com/, https://www.kobis.or.kr/,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평론): 영화 <창궐>의 장르적 특성과 캐릭터 분석 참조, 박평식 평론가 리뷰: <창궐>의 서사적 한계와 연출력에 대한 비평적 관점 인용, https://www.kci.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