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위대한 쇼맨을 처음 봤을 때 눈물을 흘렸습니다. 'This Is Me'가 흐르는 장면에서 소외된 이들이 당당히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했죠.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보고 실제 역사를 찾아보니 제가 감동받았던 그 이야기가 사실은 철저히 각색된 '아름다운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영화 속 P.T. 바넘은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을 준 낭만적인 쇼맨이지만, 실제 인물은 인종차별과 착취로 얼룩진 사업가에 가까웠습니다. 화려한 음악과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그리고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이유를 제 경험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위대한 쇼맨 속 소외된 이들의 찬가, 'This Is Me'가 만든 정서적 공감
영화 위대한 쇼맨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음악이었습니다. 특히 주제곡인 'This Is Me'는 사회적 낙인(Stigma)을 극복하고 당당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들의 외침으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낙인이란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부정적인 꼬리표가 붙어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저 역시 이 장면에서 영화적 장치라는 걸 알면서도 울컥했습니다. 바넘(휴 잭맨 분)이 모은 '특이한 사람들'은 세상이 숨기려 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로 전환합니다. 수염 난 여성 레티(케알라 세틀 분)가 "나는 용감하고, 거침없고, 부끄럽지 않다(I am brave, I am bruised, I am who I'm meant to be)"고 외치는 순간, 결핍을 자산으로 바꾼 듯한 감동이 밀려왔죠.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들은 '긍정적 자아 정체성(Positive Self-Identity)'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쉽게 말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받던 이들이 그 다름을 '특별함'으로 승화시켜 무대 위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수많은 소수자와 상처받은 이들에게 "당신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실제로 영화 개봉 후 'This Is Me'는 다음과 같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주제가상 수상
-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
-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OST 등재
영화의 OST는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습니다. 라라랜드의 작사팀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참여해 19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힙합과 팝의 요소를 결합했고, 덕분에 시대극의 지루함을 완전히 탈피했죠. 저는 개인적으로 'Rewrite the Stars'를 들으며 필립(잭 에프론 분)과 앤(젠데이아 분)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장면에서 영화가 전하려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꿈'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바넘 효과'와 역사적 미화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
하지만 영화의 화려한 커튼 뒤에는 '실존 인물 P.T. 바넘'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실제 바넘은 영화처럼 낭만적인 인도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흑인 여성 조이스 해스를 조지 워싱턴의 유모라고 속여 전시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시체를 공개 부검해 또다시 돈을 벌었습니다. 장애인들을 '프릭쇼(Freak Show)'의 구경거리로 삼았고, 이는 철저히 상업적 착취에 가까웠죠. 심리학 용어인 '바넘 효과(Barnum Effect)'는 "누구에게나 해당할 법한 모호한 말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믿게 만드는 현상"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점쟁이가 "당신은 때때로 외로움을 느낍니다"라고 하면 대부분 "맞아!"라고 반응하는 심리를 말합니다. 영화 역시 관객들에게 '성공과 감동'이라는 모호하고 달콤한 환상을 심어주며 실제 인물의 추악한 진실을 가려버렸습니다(출처: 대한심리학회 용어사전). 가디언(The Guardian)의 피터 브래드쇼는 이를 두고 "역사를 지나치게 살균 처리하여 도덕적 공백 상태로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다시 보면서 바넘이 단원들을 파티장에 못 들어오게 막는 장면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영화는 이를 바넘의 일시적인 실수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본질적인 계급 상승 욕구를 드러낸 장면이었죠. 더 큰 문제는 제니 린드(레베카 퍼거슨 분)의 왜곡입니다. 영화에서 제니는 바넘에게 거절당하자 보복으로 키스 스캔들을 일으키는 악녀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제니 린드는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리며 공연 수익 대부분을 고아와 미망인을 위해 기부한 인물이었고, 바넘의 과도한 상업주의에 질려 스스로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영화는 이 고결한 인물을 단순한 갈등 장치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역사학자들이 지적하는 바넘의 주요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흑인과 장애인을 상업적으로 착취한 프릭쇼 운영
- 관객을 속이기 위한 과대광고와 허위 마케팅 (피지 인어 사기 등)
- 사망한 출연자의 시체를 공개 부검하여 재차 돈벌이에 활용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을 때 어디까지 각색이 허용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영화는 분명 창작물이지만, 실존 인물의 이름을 걸었다면 최소한의 역사적 책임은 져야 하지 않을까요.
계급 상승의 욕망과 '진정성' 없는 화해의 문제
영화 속 바넘의 행동 원동력은 사실 소수자에 대한 애정보다는 '상류 사회로의 진입 욕구'에 가깝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귀족 사회의 인정을 갈구하며, 제니 린드와의 투어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믿어준 서커스 단원들을 파티장에서 뒷전으로 밀어내고, 화재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돌아옵니다. 문제는 이 화해의 과정이 너무나 급작스럽고 작위적이라는 점입니다. 이용당하고 소외되었던 단원들이 돌아온 바넘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집을 주었다"며 단숨에 용서하는 장면은, 서사적 개연성보다는 뮤지컬 특유의 '해피엔딩'을 위해 인물들의 자존심을 희생시킨 결과로 보입니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마놀라 다기스는 "서사의 깊이보다는 눈을 현혹하는 스펙터클에 치중하여, 인물 간의 갈등이 피상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 역시 'From Now On' 장면에서 바넘이 반성하는 듯 보였지만, 그 반성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다가왔는지는 의문입니다. 단원들은 그동안 바넘에게 철저히 이용당했고, 심지어 파티장 출입조차 거부당했습니다. 그런데 단 한 곡의 노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지나치게 편의적인 서사 전개였죠.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인지부조화란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편한 심리 상태를 의미합니다. 단원들은 바넘에게 배신당했지만, 동시에 그가 자신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줬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복잡한 감정을 단순한 화해로 축약해버렸고,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입체성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라라랜드의 작사팀이 참여한 넘버들은 시대극의 한계를 뛰어넘는 현대적 감각을 선사했고, 카메라는 무대 위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마치 함께 춤추듯 잡아냈습니다. 비록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우화'일지라도, 영화가 만들어낸 '시각적·청각적 황홀경'만큼은 그 자체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위대한 쇼맨은 결국 우리에게 "어떤 진실을 보고 싶은가"라고 묻는 영화입니다. 화려한 쇼 뒤의 어두운 진실을 직시할 것인가, 아니면 그 쇼가 주는 찰나의 희망과 감동에 몸을 맡길 것인가. 저는 비록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는 못하겠지만, 가끔은 이런 황홀한 거짓말에 속고 싶을 때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영화를 볼 때는 실제 역사와 창작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화려한 음악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C%84%EB%8C%80%ED%95%9C%20%EC%87%BC%EB%A7%A8, https://namu.wiki/w/%EC%9C%84%EB%8C%80%ED%95%9C%20%EC%87%BC%EB%A7%A8/%EC%A4%84%EA%B1%B0%EB%A6%AC, https://www.youtube.com/watch?v=KYGl8RGXMqs, https://www.theguardian.com, The New York Times: Manohla Dargis의 비평 "Review: 'The Greatest Showman' Is a Flashy, Fake-Hearted Spectacle", http://www.cine21.com, 심리학용어사전: '바넘 효과(Barnum Effect)'의 정의와 대중 심리 조작 기제 관련 이론 참조, 이동진의 영화 평론 (B tv 영화당): "쇼 비즈니스의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현대적 뮤지컬의 전략" 분석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