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죽은 사람을 AI로 되살린다'는 설정이 조금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감정까지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불편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극장에 앉아 정인(배수지)이 우주인 남자친구와 영상통화하며 웃는 장면을 보는 순간, 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었기에,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2024년 6월 개봉한 영화 <원더랜드>는 약 6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290만 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기술과 감정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외면해온 질문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원더랜드 속 AI 복원 서비스, 그리움을 데이터로 저장하다
영화 속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상인간을 구현하는 서비스입니다. 여기서 빅데이터(Big Data)란 개인의 SNS 기록, 통화 내역, 사진, 영상 등 디지털 발자국 전체를 의미하는데, 이를 AI가 학습하여 고인의 말투와 성격, 습관까지 재현해냅니다. 쉽게 말해 故人의 디지털 잔상을 살아있는 것처럼 작동시키는 시스템인 셈입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건 이 서비스를 신청하는 사람들의 동기였습니다. 탕웨이가 연기한 바이리는 어린 딸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아 스스로 원더랜드에 가입합니다. 배수지의 정인은 식물인간 상태의 연인을 우주비행사로 재구성해 매일 대화를 나눕니다. 이들은 모두 '상실의 고통'을 당장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AI 윤리 연구에서는 이러한 기술을 'Digital Immortality(디지털 불멸)'이라 부릅니다. 디지털 불멸이란 인간의 의식이나 기억을 데이터 형태로 보존하여 물리적 죽음 이후에도 존재를 이어가는 개념입니다. 영화는 이 개념을 상업적 서비스로 구체화하면서, 기술이 애도(Grief)의 과정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보여줍니다(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 저는 영화를 보며 문득 제가 최근 정리한 고인의 카카오톡 대화방이 떠올랐습니다. 그 대화방을 지우지 못하는 이유가, 어쩌면 저도 디지털 형태로나마 그 사람의 흔적을 붙잡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별 유예, 완벽한 가짜와 불완전한 진짜 사이
영화의 핵심 갈등은 정인과 태주의 관계에서 폭발합니다.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은 태주(박보검)는 뇌손상 후유증으로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반면 원더랜드 속 AI 태주는 여전히 다정하고 세심합니다. 정인은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혼란을 겪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한 '이상화된 이미지'를 사랑하는가? 심리학에서는 이를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c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대상 항상성이란 상대방이 부재하거나 변화해도 그 사람에 대한 심리적 연결을 유지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정인은 이 능력이 시험받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정인의 선택을 쉽게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현실의 태주는 불안정하고 때로 폭력적이기까지 합니다. 반면 AI 태주는 늘 정인의 편입니다. 제가 만약 정인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아마 저 역시 AI와의 대화를 끊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영화평론가들은 이 부분에서 평가가 갈렸습니다. 일부는 "기술이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비판했고(출처: 씨네21), 다른 이들은 "현대인의 고독을 예리하게 포착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우리 시대는 이미 SNS 속 '편집된 자아'와 관계 맺는 데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원더랜드 시스템이 과부하로 오류를 일으키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시뮬레이션도 결국 '유한'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별을 유예하는 시간은 영원할 수 없으며,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상실의 치유, 작별 없는 애도의 위험성
바이리의 이야기는 영화에서 가장 비극적입니다. 그녀는 딸을 위해 죽음을 숨겼지만, AI 바이리가 오작동하며 딸은 결국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딸이 "엄마, 자장가는 계속 불러줄 거지?"라고 묻는 순간, 아이는 이미 엄마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서 '애도 작업(Mourning Work)'은 상실을 인정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원더랜드 서비스는 이 과정을 인위적으로 지연시킵니다. 영화는 이러한 지연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실제로 2024년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이 영화는 개봉 2주 차에 전주 대비 약 82% 하락한 관객 수를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흥행 실패의 원인으로는 옴니버스 구성의 느슨함, SF 장르에 대한 한국 관객의 낮은 선호도 등이 꼽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직면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주요 비판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여러 에피소드를 병렬 배치하여 감정선이 분산됨
- AI 윤리나 사회적 파장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부족
- 정유미·최우식의 서브 플롯이 본 줄거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함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잘 헤어지는 법'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슬픔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슬퍼할 권리, 그것이야말로 남겨진 자의 치유에 필수적입니다. 영화 말미, 바이리가 다시 원더랜드 속 고고학 현장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여운이 깁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딸은 이제 엄마 없이도 살아갈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을 영화는 조용히 말합니다. 저는 극장을 나오며 제 휴대전화 속 '나중에 볼 사진' 폴더를 열어봤습니다. 그 안에는 더 이상 연락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사진이 수십 장 들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저도 용기를 내어 그 폴더를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술이 제공하는 위안도 좋지만, 결국 우리는 현실 속에서 슬픔을 소화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요. 원더랜드는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진 용기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B%90%EB%8D%94%EB%9E%9C%EB%93%9C(%EC%98%81%ED%99%94), https://www.youtube.com/watch?v=0EbpPY2fagY, https://www.youtube.com/watch?v=lUsV2fNMSbE, http://www.cine21.com, http://www.kobis.or.kr, http://www.fca.kr, https://www.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