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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광대와 권력, 연민과 폭력, 미학과 잔혹함)

by heeya97 202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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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영화 〈왕의 남자〉는 조선시대 광대들이 연산군의 궁궐로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권력과 욕망, 그리고 생존의 드라마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인간의 고독과 예술의 힘, 그리고 폭력적인 권력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이들의 비극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광대 장생과 공길이 연산군과 맺는 복잡한 관계는 연민과 폭력, 미학과 잔혹함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광대와 권력: 웃음으로 생존을 거래하는 이들

장생과 공길은 소속된 광대패의 꼭두가 공길에게 양반들을 상대로 동성 성상납을 시키며 밥을 벌자 이를 견디지 못한 장생이 공길을 데리고 도망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공길이 꼭두를 죽이게 되고, 충격에 빠진 공길을 맹인 연극으로 달래주며 장생은 한양으로 향합니다. 한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저잣거리 광대판에 난입해 육갑, 칠득, 팔복 등 한양의 광대들을 재주로 압도하고, 함께 왕과 후궁을 풍자하는 광대극을 벌입니다. 하지만 환관 김처선에게 발각되어 의금부로 끌려가 매질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장생은 "우리가 왕을 웃긴다면 모욕이 아니다"라며 왕 앞에서 광대극을 벌이게 해달라고 외치고, 김처선의 계략에 따라 실제로 연산군 앞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습니다. 김처선은 연산군의 애정결핍과 선대왕만을 받드는 중신들에 대한 환멸을 이해하며, 광대들을 이용해 중신들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긴장한 광대들의 실수 연발로 좌중이 싸늘해지던 순간, 공길이 애드리브로 장생과 합을 맞추며 아들 타령을 부르자 연산군이 파안대소를 터뜨립니다. 이로써 광대들은 궁에 머물 수 있게 되지만, 이는 동시에 권력의 장난감이 되는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광대들은 생존을 위해 웃음을 팔지만, 그 웃음 뒤에는 존엄을 담보로 한 거래가 숨어 있습니다. 장생의 공격적인 생존력은 멋있으면서도 서글픈데, 그는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세상의 규칙을 이용해 어떻게든 버티려 합니다. 반면 공길은 침묵과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그가 받는 시선은 애정이라기보다 소유 욕망에 가깝습니다. 광대라는 존재는 권력의 심장부를 찌르는 칼끝처럼 기능하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희생되는 약자이기도 합니다. 관객은 그들의 웃음 속에서 생존의 절박함을 읽고, 그 절박함이 만들어내는 연민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연민과 폭력: 왕의 고독과 광대의 비극

연산군은 광대들을 이용해 중신들을 풍자하는 연극을 벌이며 즐거워하지만, 그의 행동은 점차 광기로 치닫습니다. 왕이 익선관을 광대들에게 바치는 돌발행동을 벌이고, 매관매직을 한 윤지상을 추궁해 파직시키며 손가락을 자르는 형벌을 내립니다. 공길은 연산군과 단둘이 손가락 인형극과 그림자 인형극을 보여주며 순수한 교감을 나누지만, 장생은 그 모습이 예전 양반집에 몸을 팔던 공길과 겹쳐 보여 불안해합니다. 연산군은 폐비 윤씨 사건을 연상케 하는 경극을 보며 어머니를 외치고, 눈이 돌아가 선왕의 후궁들을 칼로 찔러 죽이며 인수대비까지 밀쳐 급사시킵니다. 이후 공길에게 종4품의 벼슬을 내리지만 공길은 궁에서 나가기를 원합니다. 장녹수가 질투심에 공길의 옷을 벗기려 하다 쫓겨나고, 공길은 결국 벼슬을 받아들입니다. 장생과 공길의 사이는 틀어지고, 영의정 이극균과 좌의정 성준은 사냥놀이를 빌미로 공길을 죽이려 하지만 육갑이 대신 화살을 맞고 죽습니다. 연산군의 폭력은 그의 깊은 고독과 애정결핍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공길을 통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받으려 하지만, 그 방식은 타인을 인간으로 대하기보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도구로 삼는 것에 가깝습니다. 공길이 화살을 연산군 옆 기둥에 쏘고 쓰러지자, 연산군은 배신감에 공길에게 거칠게 키스합니다. 이 장면은 연산군의 병적인 집착과 동시에 그가 느끼는 외로움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영화는 권력자의 고통을 깊게 파고들면서도, 그 고통이 낳는 타인의 피해를 냉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연민과 폭력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관객은 이해와 비판 사이에서 흔들리게 됩니다.

왕의 남자 속 미학과 잔혹함: 아름다움이 가리는 현실

장녹수가 공길을 모함하기 위해 위조한 벽서로 인해 장생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옥에 갇힙니다. 김처선이 장생을 몰래 빼주지만, 장생은 도망가지 않고 궁궐에 줄을 쳐서 연산군을 가지고 노는 줄타기 놀이를 시작합니다. "기생이 질려서 사내놈과 붙어먹고, 그 비역질에서 비단옷과 벼슬이 나온다"라는 말에 연산군이 발끈해 장생을 죽이려 하고, 장생은 추락한 후 양쪽 눈이 인두로 지져지는 형벌을 당합니다. 공길은 인형극 중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로 그치고, 좌절한 연산군은 녹수를 찾아가지만 김처선은 이미 목을 매달아 죽은 뒤였습니다. 연산군은 공길의 인형극을 떠올리며 연회를 준비하고, 눈이 먼 장생은 줄타기를 하며 타령을 늘어놓습니다. 공길이 울먹이며 달려와 장생의 반대편에 서고, 두 사람은 눈이 먼 상태에서도 서로 대화합니다. 연산군은 무표정하다가 공허한 웃음을 띠며 지켜보고, 장녹수는 슬픔을 띤 얼굴로 서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태어나서도 광대로 태어날 것이라며 줄을 타는 순간, 연산군을 폐위하기 위한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장생과 공길은 공중에 몸을 던지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왕의 남자〉는 너무도 아름답게 찍힌 장면들 때문에 오히려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광기의 궁, 촛불과 그림자, 의상과 분장, 춤과 몸짓이 만들어내는 미학이 압도적이어서 폭력과 착취가 드라마틱한 장치로 소비될 여지가 있습니다. 관객은 미학의 매혹 속에서 어느 순간 이해와 미화의 경계에서 흔들립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입니다. 연민과 혐오,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한데 섞어 관객의 판단을 계속 흔들기 때문입니다. 〈왕의 남자〉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대신 관객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이 소유 욕망으로 변질될 때, 권력의 외로움이 타인의 삶을 파괴할 때, 웃음이 칼이 되고 칼이 다시 웃음이 되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과 함께 남겨집니다. 공길의 침묵이 선택인지 강요인지, 연산군의 광기가 연민의 대상인지 비판의 대상인지 영화는 확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이 작품을 단순한 역사극이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로 만들어줍니다.


[출처]
나무위키 - 왕의 남자: https://namu.wiki/w/%EC%99%95%EC%9D%98%20%EB%82%A8%EC%9E%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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