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개봉한 영화 <얼굴>은 40년 만에 백골로 발견된 여성 정영희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1970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냅니다. 시각장애인 도장 장인 임영규와 그의 아들 동환이 겪는 충격적인 진실 규명 과정은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외모 차별, 장애인에 대한 편견, 그리고 왜곡된 기억이 만들어낸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과거의 상처가 현재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1970년대 외모 차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영화 <얼굴>은 1970년대 경제 발전기 이면에 존재했던 극심한 인권 사각지대를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청풍피복 공장에서 일하던 정영희는 지능이 다소 낮고 일 처리가 느리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지속적인 멸시와 구박을 받았습니다. 특히 화장실 사용조차 1분 안에 다녀오라는 비인간적인 요구를 받고, 결국 실금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똥걸레'라는 모욕적인 별명으로 불리게 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별명이 외모 비하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40년 후 영희를 기억하는 옛 동료들은 "똥걸레라 불린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얼굴이 그 모양이라서"라고 대답합니다. 실금 사건과 외모는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인식 속에서 영희에 대한 멸시는 그녀의 모든 측면을 부정적으로 왜곡시켰습니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어떻게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당시 노동 환경의 열악함도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화장실 한 칸을 두고 긴 줄을 서야 했고, 생리적 현상조차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관리자는 영희에게 "바빠 죽겠는데 화장실을 가느냐"며 윽박지르고, 이러한 비인간적 대우는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그림자, 즉 경제 성장의 이면에 희생된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사용자 비평에서 지적했듯이, 이 영화는 "법의학적 얼굴 복원"이라는 설정을 통해 단순히 물리적 얼굴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트라우마와 억압된 진실을 복원하는 상징적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희의 얼굴이 괴물처럼 못생겼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증언은 사실 그녀의 실제 외모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이 만들어낸 왜곡된 이미지였습니다. 영화 말미에 공개되는 영희의 실제 사진은 평범한 얼굴이었고, 이는 외모 차별이 얼마나 근거 없는 편견에서 비롯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시각장애인 임영규의 왜곡된 아름다움 인식과 비극의 씨앗
영화의 핵심 비극은 시각장애인 임영규의 뒤틀린 심리에서 비롯됩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나 평생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자란 영규에게 '아름다움'은 일반적인 시각적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으로 이해했고, 자신이 만든 도장의 글씨가 아름답다는 칭찬을 받을 때 비로소 존재 가치를 느꼈습니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끄는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영규와 영희의 만남은 처음에는 따뜻한 온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영규의 도장 가판대를 찾아와 진심으로 칭찬하고 주먹밥을 가져다주는 영희의 모습은 평생 타인의 애정을 받아본 적 없는 영규에게 큰 위안이었습니다. 주변 상인들은 영규를 부추기며 "절세미녀가 주먹밥도 주고", "얼른 같이 살자고 해"라고 말했는데, 이는 장애인인 영규와 지능이 낮은 영희 두 사람을 동시에 조롱하는 악의적인 농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규는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영희를 "아름다운 아내"로 인식하게 됩니다. 비극의 전환점은 친구 규칠의 한 마디였습니다. "심성이 중요하지 얼굴은 못 보는 게 낫다"는 말과 함께 "네 아내 얼굴이 괴물처럼 못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규는 극심한 배신감과 모욕감을 느낍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계속 놀려먹고 있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영희마저 자신을 속였다고 여기게 됩니다. 영규의 독백 "그 년놈들이 나를 놀려먹고 있었구나. 내가 그거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는 그의 깊은 열등감과 상처를 드러냅니다. 권해효 배우의 탁월한 연기로 표현된 영규의 내면은 매우 복잡합니다. "아름다운 건 존경받고 추앙받고, 추한 거는 멸시 당해. 다 알아"라는 대사는 그가 아름다움의 본질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오직 타인의 인정이라는 왜곡된 방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영희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는 사실보다, 사회적으로 "못생긴 아내"를 가진 남자로 비웃음 받는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사용자가 지적한 대로, 영규의 비극은 순전히 그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무시와 차별에 시달린 환경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을 냉정하게 그려내며, 사회 구조적 폭력이 개인의 심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얼굴 속 정영희의 용기와 진실 복원의 의미
정영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가장 용기 있는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불륜을 무심코 말했다가 어머니에게 혹독한 폭력을 당하고 집에서 쫓겨난 영희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회적 약자로서 멸시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영규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다시 용기를 얻게 됩니다. "당신을 만난 덕에 다시 용기를 얻었다"는 영희의 고백은 그녀가 영규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의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희의 진정한 용기는 청풍피복 사장 백주상의 성범죄를 폭로하는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동료 진숙이 사장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알게 된 영희는, 비록 어눌한 말투와 느린 행동으로 평소 무시받았지만 정의감만큼은 누구보다 뚜렷했습니다. 그녀는 사장실에 직접 찾아가 진숙을 해고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청풍피복 백주상 사장은 여자를 강제로 성폭행하는 변태다'라는 전단을 직접 작성하여 거리에 뿌렸습니다. 비록 '강제로'를 '강재로', '성폭행'을 '성포켕'이라고 잘못 쓸 정도로 교육받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녀의 글씨는 예뻤고 그 용기는 누구보다 컸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한국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낙인찍는 구조였습니다. 진숙은 영희의 폭로로 인해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영희에게 "작작해, 이 썅년아!"라고 소리치며 뺨을 때렸습니다. 노년의 진숙은 이를 회고하며 "그렇게 폭로를 하면 사람들은 성폭행을 행한 사람을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폭행 당한 사람이 누군지를 궁금해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피해자 비난과 2차 가해가 만연했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희는 백주상이 사주한 깡패들에게 두 번이나 무참히 폭행당했지만 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장실에 다시 찾아가 백주상의 멱살을 붙잡고 소리쳤습니다. 이러한 저항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용기였습니다. 영화는 영희를 통해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당시 시대의 여성상"을 거부하고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탈시대적인 여성상"을 보여줍니다. 영화 말미에 공개되는 영희의 실제 얼굴 사진은 단순한 반전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40년 동안 "괴물처럼 못생겼다"고 회자되던 얼굴이 실제로는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사실은, 사회적 편견이 어떻게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왜곡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아들 동환이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오열하는 장면은 단순히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슬픔이 아니라, 어머니가 겪었을 고통과 자신이 그 진실을 묻어버리려 했던 죄책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폭발입니다. 사용자가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법의학적 얼굴 복원"을 통해 잊혀진 진실을 되살리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백골에서 복원된 얼굴은 단순한 물리적 재현이 아니라 억압되고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는 행위입니다. 영희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 순간, 모든 거짓 증언과 편견이 무너지고 진실만이 남게 됩니다. 이는 역사적 진실 규명의 중요성을 은유하는 강력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영화 <얼굴>은 외모 차별, 장애인 편견, 성폭력, 그리고 진실 은폐라는 무거운 주제들을 2시간여에 걸쳐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임영규가 마지막에 중얼거리는 "나는 살인자 아냐... 난 살인자"라는 도치된 독백은, 자기합리화와 죄책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아들 동환 역시 진실을 알고도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증거를 삭제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2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도덕적 타협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출처]
나무위키 얼굴 줄거리: https://namu.wiki/w/%EC%96%BC%EA%B5%B4(2025)/%EC%A4%84%EA%B1%B0%EB%A6%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