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상호 감독의 2018년 작 <염력>은 개봉 당시 약 9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410만 명)에 한참 못 미치는 흥행 참패를 기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천만 영화 <부산행>을 만든 감독의 차기작이라면 최소한의 상업적 성공은 보장될 거라 예상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기대를 정면으로 배신한 케이스였습니다. 극장을 나서며 든 생각은 "이건 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히어로 코스프레를 한 사회극"이라는 것이었죠.
염력 속 초능력 묘사의 현실성, 그리고 한계
<염력>에서 주인공 신석헌(류승룡 분)이 보여주는 텔레키네시스(염동력)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화려한 초능력과는 거리가 멉니다. 여기서 텔레키네시스란 물리적 접촉 없이 정신력만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초능력을 의미하는데, 영화 속 석헌은 이 능력을 쓸 때마다 온몸을 비틀고 괴성을 지르며 마치 중노동을 하듯 힘겨워합니다. 일반적으로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는 능력의 스펙트럼(spectrum, 범위와 한계)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는 주문과 손동작을 통해 능력을 발동하고, DC의 슈퍼맨은 크립토나이트라는 명확한 약점이 존재하죠. 그런데 <염력>의 석헌은 초반에는 겨우 맥주잔 몇 개를 띄우는 수준이다가, 후반부 유치장 탈출 시퀀스에서는 갑자기 철문을 부수고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이런 일관성 없는 능력치 변화는 관객에게 "언제부터 저렇게 강해진 거지?"라는 의문만 남깁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장면은 석헌이 용역 깡패들과 맞서는 대목이었습니다. 분명 초반에는 염력으로 깡패들을 손쉽게 제압했는데, 중반부에서는 왜인지 몸으로 직접 돌진하다가 집단 구타를 당하더군요. 능력의 성장 곡선이나 제약 조건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니, 이건 시나리오 편의주의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VFX(Visual Effects, 시각효과) 완성도도 130억 원의 제작비를 고려하면 아쉬운 수준입니다. 물체가 공중에 떠오를 때의 물리적 질감이나 중력 표현은 나쁘지 않았지만, 석헌이 비행하는 장면에서는 CG 합성 티가 과하게 났습니다. 같은 해 개봉한 마블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비교하는 건 불공평하겠지만, 적어도 2018년 한국 블록버스터의 기준선은 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재개발 서사
영화의 핵심 배경인 철거 현장은 2009년 용산참사를 직접적으로 환기시킵니다. 용산참사란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민들과 경찰의 충돌로 6명이 사망한 비극적 사건입니다(출처: 한겨레신문). 영화 속에서도 태산건설이라는 대기업이 면세점 사업권을 확보하기 위해 상가 세입자들을 강제로 내쫓고, 민 사장(김민재 분)이 이끄는 용역 깡패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부분이 제게는 예상 밖으로 피상적이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는 폭력과 권력의 메커니즘을 섬뜩할 정도로 파고들었는데, <염력>에서는 재개발 문제가 주인공의 '부성애 회복' 서사를 위한 배경 장치로만 소비됩니다. 심은경이 연기한 딸 루미와 박정민의 김 변호사를 포함한 철거민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석헌의 초능력이 발휘되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로 그려지죠.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이를 두고 "장르에 안착하지 못한 주제의식"이라고 평했는데, 저도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출처: 씨네21). 용산참사라는 무거운 역사적 사건을 다루려면 <택시운전사>처럼 외부자의 시선을 통한 증언 형식이든, <1987>처럼 집단 저항의 서사든, 명확한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염력>은 초능력 액션과 사회 고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둘 다 놓쳐버린 느낌입니다. 특히 악역인 홍 상무(정유미 분)의 캐릭터는 흥미롭지만 활용이 아쉽습니다. 그녀는 석헌에게 "진짜 초능력은 돈과 권력"이라는 대사를 던지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폭력성을 상징하는데, 정작 영화는 이 캐릭터를 깊이 파고들지 않고 전형적인 '재벌 2세 악녀'의 틀에 가둬버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배우 정유미의 연기력을 낭비한 가장 아쉬운 지점이었습니다.
현실 비판의 날카로움, 그러나 흐릿한 결말
<염력>이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초능력을 가져도 시스템을 이길 수 없다면?"입니다. 석헌은 딸을 구하기 위해 용역들을 제압하고 컨테이너를 공중에 띄우지만, 결국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습니다. 여기서 공무집행방해죄란 공무원의 정당한 직무 집행을 폭행이나 협박으로 방해하는 범죄를 의미하는데, 석헌의 경우 경찰 진압 과정에서 초능력을 사용한 것이 이에 해당한 것이죠. 일반적으로 슈퍼히어로 영화는 주인공의 승리와 사회 정의 실현으로 끝나지만, 제 경험상 <염력>의 결말은 정반대였습니다. 4년 후 석헌이 출소했을 때, 재개발 현장은 공터로 방치되어 있고 태산건설은 내부 비리로 손해를 봤지만 법적 처벌은 명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루미는 푸드트럭 '초능력치킨'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석헌은 다시 맥주잔을 염력으로 나르는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열린 결말은 한편으로는 현실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카타르시스를 기대한 관객에게 허탈함을 안깁니다. 박평식 평론가가 "허풍에 의미를 부여할 것까지야"라고 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초능력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도입했으면서도, 정작 그 힘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메시지는 너무 염세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의 시도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고 봅니다. 한국 상업영화 시장에서 '한국형 히어로'를 실험했다는 점, 그리고 초능력자조차 무력해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견고함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말이죠. 다만 그 실험이 흥행과 작품성 모두에서 실패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염력>의 최종 관객수는 99만 명으로, 제작비 대비 약 70%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염력>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연상호 감독은 좀비물에는 애정이 넘치지만, 슈퍼히어로물에는 관심이 없구나"였습니다. 이 영화는 초능력 액션의 쾌감도, 사회 고발의 깊이도 모두 중도반단한 채 어정쩡한 지점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나는 히어로가 아니라 허름한 점퍼를 입고 딸의 치킨집을 지키려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망토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묵묵히 싸워주는 평범한 이웃의 연대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7%BC%EB%A0%A5(%EC%98%81%ED%99%94), https://www.youtube.com/watch?v=V9ApMPUDGf8, https://www.cine21.com, https://blog.naver.com/lifeisntcool, https://www.kofic.or.kr, https://www.dexterstudios.com, https://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