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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블랙코미디, 구조조정, 윤리적 딜레마)

by heeya97 2026.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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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제목부터 불편한 체념을 담고 있습니다. 25년 경력의 제지회사 노동자 만수가 미국계 회사 인수 후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단순한 실직 드라마를 넘어 현대 사회의 폭력적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사과가 아닌 폭력의 언어로 작동하는 지점에서, 이 영화는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블랙코미디로 포장된 시스템 폭력의 민낯

만수는 태양 제지에서 25년간 근무한 숙련공으로, 중산층의 넉넉한 삶을 영위하던 인물입니다. 단독주택을 개조해 아내 미리, 아들 시원, 딸 리원과 함께 살며 두 마리 반려견까지 기르는 성공한 인생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계 회사 인수 후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만수에게 해고자 명단 작성 지시가 내려옵니다. 만수는 노동자를 자르는 것을 도끼로 목을 날리는 것에 비유하며 항의 연설을 준비하지만, 담당자는 "No other choice.(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떠납니다. 정작 해고당한 사람은 만수 본인이었습니다. 영화는 만수의 무너짐을 블랙코미디 톤으로 그려냅니다. 3개월 내 재취업을 선언했지만 13개월이 흘러 창고형 마트 아르바이트로 전락하고, 이마저 잘리자 집안 물건을 당근에 팔고 넷플릭스를 끊습니다. 반려견 시투와 리투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미리의 부모님께 맡겨야 했고, 3억 원이 넘는 채무 독촉장이 날아옵니다. 만수가 무너지는 방식은 관객에게 익숙합니다. 실직은 단순히 경제적 곤란이 아니라 사회적 언어의 박탈이며, "어디 다니는 사람"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순간부터 주변의 시선과 관계가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는 이 고통을 견딜 만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관객이 핵심 질문에서 빠져나갈 틈도 제공합니다. "이 사회가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붙이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이 "만수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는 개인 서바이벌로 축소될 위험이 있습니다.

구조조정이 만든 연쇄 살인의 논리

만수는 잡지에 신생 제지회사 구인공고를 투고해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모으고, 자신보다 뛰어난 지원자를 제거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장식장의 북한제 64식 권총을 살해 도구로 챙기고, 프라모델 모형을 대신 끼워놓습니다. A+급 경쟁자 구범모, 고시조, 최선출을 모두 죽이면 문 제지에 재취업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첫 번째 타깃 구범모는 만수와 비슷한 처지의 실직자입니다. 만수는 범모를 스토킹하며 그가 25년간 종이로 먹고살았기에 종이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공감하며 끄덕입니다. 범모의 아내 아라가 젊은 신인 배우와 불륜 관계를 맺는 장면을 목격한 만수는, 급히 전화를 걸어 면접 자리가 생겼다는 거짓말로 범모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결국 만수, 범모, 아라가 뒤엉켜 싸우는 아수라장 끝에 범모는 만수와 아라에게 총을 맞고 사망합니다. 아라는 현장을 수습하고 내연남과 불륜을 이어가지만, 만수는 차에 3,000km가 넘는 주행 기록을 남기며 미리의 의심을 받습니다. 두 번째 타깃 고시조는 구둣가게에서 일하며 딸을 키우는 아버지입니다. 만수는 자신도 음악 연주를 하는 딸이 있다며 감성팔이로 시조의 환심을 삽니다. 약속 시간을 일부러 어기고 해안도로변에서 "어쩔 수가 없다"라는 자기암시를 반복하며 헛구역질합니다. 고시조가 차량 고장을 도와주러 왔을 때 만수는 총을 겨누고, 도망치던 시조는 총에 맞아 숨집니다. 시체를 트렁크에 실고 돌아온 만수는 땅을 파다 지쳐 잠들고, 다음 날 경찰이 찾아오지만 체포 대상은 만수가 아닌 아들 시원이었습니다. 시원은 부모의 살림에 보태려고 동호네 아버지 핸드폰 가게를 털었던 것입니다. 만수는 동호네 아버지의 불륜 증거를 들먹여 사건을 덮고, 고시조의 시체를 분재용 철사로 뭉쳐 사과나무 아래 묻습니다. 세 번째 타깃 최선출은 외딴섬에 사는 음주운전자입니다. 만수는 술에 취한 선출과 화기애애하게 술자리를 가지며, 테이블 밑 양동이로 술을 버려 선출만 취하게 만듭니다. 선출이 폭탄주를 권하자 만수는 "어쩔수가없다"를 되뇌며 9년간의 금주를 깨고 술을 마십니다. 만수는 폭주하기 시작해 치통이 생긴 충치를 펜치로 직접 뽑고, 선출의 온몸을 랩과 테이프로 감아 땅에 묻습니다. 한편 미리는 사과나무 아래를 파서 무언가 물컹한 것을 발견하고 만수의 범죄를 눈치챕니다. 미리는 전화로 집을 위해 어떤 악행을 저지르더라도 지지하겠다고 말하며 만수를 옹호합니다. 만수는 선출의 입에 깔대기를 끼우고 다진 고기와 술을 부어 질식사시키고, 혼자 술을 먹다 죽은 것처럼 위장합니다.

어쩔수가없다 속 윤리적 딜레마와 "살기 위해"라는 면죄부

만수는 경쟁자를 모두 제거한 후 당당한 태도로 면접을 보고 제지 회사에 재취업합니다. 경찰은 구범모와 고시조의 과거 관계와 아라의 거짓 증언으로 범모가 시조를 죽이고 잠적했다고 결론짓습니다. 만수는 미리와 시원에게 주말에 통돼지 바베큐를 하자고 제안하지만 둘은 기겁하고, 리원과 인사한 만수는 기분 좋게 출근합니다. 리원은 처음으로 첼로 연주를 들려주는데, 연주 대상은 가족이 아닌 돌아온 반려견 시투와 리투였습니다. 미리는 리원의 눈치를 보며 방 밖에서 연주를 듣습니다. 만수가 안전 귀마개를 끼는 순간 리원의 연주는 공장 소음에 묻힙니다. 재취업한 제지 공장은 이전 직장과 달리 만수를 제외하면 인간 노동자가 없고 대부분의 공정이 AI와 기계로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무인화된 공정에서 로봇 기계가 나무를 자르는 장면은, 만수가 노동자 해고를 도끼로 목을 날리는 것에 비유했던 발언을 수미상관 구조로 표현합니다. 영화는 구조조정이 계속된 끝에 인간 노동자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납니다. 이 영화가 남기는 불편함은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라는 말이 언제부터 무엇이든 정당화하는 마법 주문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만수의 선택이 비정상으로 보이면서도 관객 마음 한구석에서 "그래도 이해는 된다"가 올라옵니다. 하지만 정말 이해해야 할 대상은 만수의 범죄성이 아니라,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세계의 논리입니다. 회사는 왜 늘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고, 개인은 왜 그 말을 받아들이는 쪽으로만 남는가? 기술과 효율이 인간의 생존을 밀어낼 때 사회는 어디까지를 정상으로 인정해야 하나? 가족은 서로의 도덕을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인가, 아니면 불안을 증폭시키는 가장 가까운 압력 장치인가? 〈어쩔수가없다〉는 "탈출"이나 "복수"의 쾌감보다, 그 쾌감을 즐기는 관객의 마음까지 포함해 묻습니다. 누군가가 무너질 때 우리는 그를 개인의 실패로 분류해 안심하는가, 아니면 그 실패가 반복 생산되는 구조를 직시할 용기가 있는가? 제목의 체념은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자화상으로 오래 따라옵니다. 스태프롤에서 제목 '어쩔수가없다'가 다른 글씨보다 천천히 타이핑되는 연출은, 주인공 가족의 주저와 합리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출처]
나무위키 - 어쩔수가없다: https://namu.wiki/w/%EC%96%B4%EC%A9%94%EC%88%98%EA%B0%80%EC%97%86%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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