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여러분은 은행이 헐값에 넘어갔다는 뉴스를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블랙머니>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론스타 사건이 그저 뉴스 한 귀퉁이를 장식하던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70조 원 가치의 외환은행이 단돈 1조 7천억 원에 매각됐다는 사실을 스크린에서 마주했을 때, 제 안에서 분노와 무력감이 동시에 치솟았습니다. 정지영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이 작품은 복잡한 금융 비리를 추적극으로 풀어내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 벌어진 거대한 음모를 고발합니다.
블랙머니 속 성추행 누명을 쓴 검사, 그가 마주한 건 거대한 금융 카르텔이었다
영화는 박수경이라는 대한은행 직원의 의문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녀는 자살 직전 동생에게 문자를 남겼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신을 조사했던 양민혁 검사(조진웅 분)가 성추행을 저질렀고, 그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었죠.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나요? 양민혁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얼마나 강하게 만드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조진웅 특유의 저돌적인 연기는 이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관객인 저 역시 그의 분노에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이상한 점이 드러납니다. 박수경이 죽기 전 금융감독원에 보낸 팩스 5장이 발견되는데, 그 내용은 대한은행의 BIS 비율 조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BIS 비율이란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을 나타내는 국제 기준으로, 8% 이상을 유지해야 은행이 건전하다고 평가받습니다(출처: 국제결제은행). 쉽게 말해 이 수치를 낮게 조작하면 멀쩡한 은행도 부실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죠.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국가적 금융 범죄로 확장됩니다.
모피아와 외국 자본의 유착, 그들은 왜 70조를 1조에 넘겼나
저는 이 부분을 볼 때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모피아'라는 단어를 혹시 들어보셨나요? 모피아(Mofia)는 재정경제부 출신 관료들과 마피아를 합친 신조어로, 금융 권력을 독점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지칭합니다. 영화는 이들이 어떻게 외국계 사모펀드와 손잡고 국가 자산을 헐값에 넘겼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양민혁 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김나리 변호사(이하늬 분)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국제 통상 전문 변호사로, 처음에는 정의감 있는 조력자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는 시스템의 논리와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 기득권 편에 서는 모습을 보입니다. 제가 이 캐릭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단순히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녀 역시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평범한 개인이었죠. 영화는 론스타 펀드가 어떻게 외환은행을 집어삼켰는지를 추적합니다. 실제로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2012년 하나은행에 매각하면서 막대한 차익을 남겼습니다(출처: 금융감독원). 그 과정에서 BIS 비율이 조작됐고, 국가 자산이 헐값에 넘어갔으며, 이익은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갔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자막으로 전달되는 실제 사건의 경과는 관객인 저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게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양민혁이 외치는 "이게 말이 되냐!"는 단순한 대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감독이 관객을 대신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었고, 저 역시 그 질문 앞에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금융 엘리트들의 세련된 논리 앞에서 상식적인 의문조차 무력해지는 현실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정지영 감독의 메시지, "모르면 당한다" 그 날선 경고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저는 영화관을 나서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미안함'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무관심했구나 하는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을 통해 줄곧 권력의 부조리를 고발해 온 인물입니다. 이번 <블랙머니>에서도 그의 연출 철학은 확고했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복잡한 금융 범죄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추적 활극으로 변주했다는 점입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BIS 비율 조작'이나 '매각 승인 과정의 법적 허점' 같은 전문 용어들을 양민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속도감 있게 풀어냈습니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메시지를 너무 직접적으로 전달하려다 보니 다소 설교조가 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투박함마저도 감독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ISDS(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제도)라는 국제 소송 제도도 언급합니다. ISDS란 외국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 기관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론스타는 이 제도를 악용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막대한 배상을 요구했고, 그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영화가 끝난 지금도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 책임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양민혁이 인사 파티에서 권력자들을 마주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연하게 샴페인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고, 그 뒤에 숨겨진 탐욕과 부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블랙머니>는 단순히 재미로만 소비하기에는 너무나 묵직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실제 론스타 사건에 대해 검색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현실에서의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 책임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분노와 함께 무력감을 안겨줬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돈과 나라의 안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고 있느냐고 말이죠. 세련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뒤에 숨겨진 이 서늘한 경고는 영화관 문을 나서는 관객들의 가슴속에 뜨거운 불씨 하나를 남겨줍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를 믿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이 영화와 마주해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B8%94%EB%9E%99%EB%A8%B8%EB%8B%88(%EC%98%81%ED%99%94), https://www.youtube.com/watch?v=SgmPOPyqpdk, http://www.cine21.com, https://www.maxmovie.com, https://news.kbs.co.kr, https://www.kobi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