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처음엔 이 영화를 보며 엄청난 기대를 품었습니다. 알 파치노와 안소니 홉킨스가 한 화면에 등장한다는 소식만으로도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에 충분했으니까요. 하지만 106분의 상영시간이 끝나고 나서 든 감정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일반적으로 거물급 배우들이 출연하면 영화의 완성도도 따라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미스컨덕트>는 그 공식이 통하지 않는 케이스였습니다. 화려한 캐스팅 뒤에 숨겨진 서사의 빈곤함과 장르적 혼선을 직접 목격하며, 영화 한 편이 무너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느낌이었습니다.
미스컨덕트, 거물급 배우진이 만든 기대와 실제 완성도의 격차
영화 <미스컨덕트>의 캐스팅 라인업은 그 자체로 영화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알 파치노와 안소니 홉킨스는 각각 <대부>, <양들의 침묵> 같은 명작을 통해 연기력의 정점을 보여준 배우들입니다. 여기에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다지던 이병헌까지 가세하며 제작 발표 당시부터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죠. 하지만 실제 영화는 이 거물들의 에너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제약회사 회장 아서 데닝은 서늘한 카리스마를 뿜어냈지만, 그의 캐릭터가 서사 안에서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동기 부여가 부족했습니다. 알 파치노 역시 로펌 대표 찰스 에이브럼스를 특유의 폭발적인 연기로 소화했으나, 두 거장이 충돌하는 결정적 장면은 기대보다 훨씬 짧고 밋밋하게 처리되었습니다. 저는 특히 이병헌 배우가 맡은 '회계사' 캐릭터에 주목했습니다. 국내 개봉 당시 마케팅에서는 이병헌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그의 캐릭터가 왜 주인공을 집요하게 추적하는지에 대한 서사적 근거가 약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히트맨이나 추격자 캐릭터는 명확한 고용 관계나 개인적 원한 같은 동기가 제시되어야 하는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런 기본적인 장르 문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영화 평론 매체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는 이 작품에 신선도 7%라는 참혹한 점수를 부여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이는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서사 구조와 캐릭터 활용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방증입니다.
무너진 서사 구조와 개연성 없는 전개의 연속
<미스컨덕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서사 구조의 붕괴입니다. 영화는 제약회사의 임상시험 조작이라는 묵직한 소재로 시작하지만, 중반부터는 치정극과 납치 스릴러, 법정 드라마를 오가며 정체성을 상실합니다. 주인공 벤 케이힐(조쉬 더하멜)은 11연승을 달성한 유능한 변호사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전문가답지 않게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옛 연인 에밀리의 집에서 시체를 발견한 후 911에 신고하려다가 지문을 지우고 도주하는 장면은, 법률 전문가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입니다. 일반적으로 변호사 캐릭터는 증거 보존과 법적 절차를 중시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제 경험상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오히려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넣는 행동만 반복합니다. 여기서 '플롯 홀(plot hole)'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플롯 홀이란 서사 전개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미스컨덕트>는 이 플롯 홀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주요 플롯 홀 사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서 데닝이 애인의 납치 사건에 갑자기 무관심해지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음
- 찰스 에이브럼스가 소송에서 연패했음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다시 데닝과 싸우려는 동기가 불분명함
- 에밀리의 시체가 벤의 집 침실로 옮겨지는 과정이 너무 손쉽게 처리됨
- 회계사 캐릭터의 정확한 고용 관계와 살해 동기가 마지막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음
한국 영화 전문 매체인 씨네21의 김도훈 편집장은 "<미스컨덕트>는 캐릭터의 매력보다는 서사의 편의를 위해 인물들을 소모한다"고 지적했습니다(출처: 씨네21).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저 역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인물들이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반전을 위해 각본에 의해 끌려다니는 느낌이 강했으니까요.
장르적 정체성을 잃은 영화의 자충수
일반적으로 법정 스릴러 장르는 명확한 규칙을 따릅니다. 증거 수집, 법정 공방, 진실 추적이라는 3단계 구조를 통해 관객에게 지적 쾌감을 선사하죠. 하지만 제 경험상 <미스컨덕트>는 이 장르적 기본기를 무시하고 너무 많은 요소를 욕심냈습니다. 영화는 법정 드라마로 시작해서 납치 스릴러로 전환되고, 다시 추격 액션으로 변신하다가 마지막엔 가정 범죄물로 끝납니다. 이런 장르 혼용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각 장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단절된 에피소드처럼 배치하면서 영화 전체의 톤이 흔들렸습니다. 여기서 '토널리티(tonality)'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토널리티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와 감정의 일관성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코미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고, 스릴러는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죠. <미스컨덕트>는 이 토널리티가 장면마다 다르게 설정되어 있어서 관객이 어떤 감정으로 영화를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이 영화를 향해 "알 파치노와 안소니 홉킨스라는 두 연기 신의 협연을 이토록 무의미하게 소비한 것은 범죄에 가깝다"고 혹평했습니다(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저 역시 이 평가에 동의합니다. 세련된 촬영 기법과 어두운 톤의 색감은 분명 수준급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빈약한 서사를 메울 수 없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가 아닌 당혹감만 안겨주었습니다. 샬롯(앨리스 이브)이 질투심 때문에 에밀리를 살해했다는 설정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그동안 쌓아온 제약회사 음모론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허무한 결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릴러 영화의 반전은 복선이 충분히 깔려 있어야 하는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냥 결말부에 충격을 주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미스컨덕트>는 화려한 캐스팅이 영화의 완성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증명한 케이스입니다. 거물급 배우들의 이름값에 기대어 서사의 허술함을 가리려 했지만, 관객과 평단은 그 속임수를 간파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영화의 심장은 결국 이야기"라는 기본 원칙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알 파치노와 안소니 홉킨스의 팬이라면 두 거장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탄탄한 법정 스릴러를 기대하신다면 다른 작품을 선택하시는 편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야망에 눈이 멀어 본질을 놓친 주인공 벤의 운명처럼, 이 영화 역시 장르적 욕심에 빠져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놓쳐버렸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AF%B8%EC%8A%A4%EC%BB%A8%EB%8D%95%ED%8A%B8, https://www.youtube.com/watch?v=NezmDYA0zyU, Variety: "Film Review: 'Misconduct' - A legal thriller with more twists than sense" (2016.02) | www.variety.com, The Hollywood Reporter: "'Misconduct': Film Review - Pacino and Hopkins team up in a dull thriller" (2016.02) | www.hollywoodreporter.com, 씨네21 (Cine21): "<미스컨덕트>, 거물급 배우들의 낭비가 아쉬운 범죄 스릴러" - 김도훈 편집장 평론 참조 | www.cine21.com, 영화진흥위원회 (KOFIC): <미스컨덕트> 국내 흥미 및 배급 현황 데이터베이스 | www.kobis.or.kr, Rotten Tomatoes: 'Misconduct' (2016) Critics Consensus and Audience Score | www.rottentomato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