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미비포유>를 처음 봤을 때 눈물을 흘렸습니다. 루이자와 윌의 마지막 이별 장면에서 감정이 복받쳐 올랐고, 윌이 남긴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자 제 안에서 묘한 불편함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별'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윌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2016년 개봉 당시 국내에서 9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장애인 인권 단체로부터는 거센 비판을 받았던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저는 대중문화가 장애를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미비포유 속 조력자살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
영화 속 윌 트레이너는 사고로 전신마비(Quadriplegia) 상태가 된 인물입니다. 여기서 전신마비란 경추 손상으로 인해 목 아래 사지의 운동 기능과 감각이 모두 상실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윌은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조력 자살 기관을 통해 생을 마감하는데, 디그니타스는 1998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스위스 법률에 따라 본인의 자발적 의사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입니다(출처: Dignitas 공식 홈페이지).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지점은 윌의 선택이 지나치게 낭만화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는 루이자가 윌을 위해 준비한 수많은 경험들을 보여주지만, 정작 윌은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현재의 삶을 부정합니다. 미국의 장애인 인권 단체인 낫 데드 옛(Not Dead Yet)은 이 영화에 대해 "장애를 가진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파한다"며 강력히 항의했습니다(출처: Not Dead Yet 공식 성명). 영화가 제시하는 윌의 선택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 장애를 오직 비극과 고통으로만 재현하며 장애인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배제함
-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나 재활 과정에 대한 언급 없이 개인의 선택만을 강조함
- 부유한 경제적 배경이 뒷받침된 '우아한 퇴장'을 미화함
저는 개인적으로 윌이 조금만 더 시간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화 속에서 윌은 루이자를 만난 지 겨우 6개월 만에 죽음을 선택합니다. 전신마비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실제로 척수 손상 환자의 심리 재활 과정을 연구한 논문들에 따르면, 장애 수용 단계는 최소 2~3년 이상 소요되며 적절한 심리 상담과 사회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장애재현의 문제와 계급적 시선
영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문제는 장애를 바라보는 비장애인 중심적 시각입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윌의 장애는 루이자의 성장을 위한 배경으로 소비됩니다. 여기서 '영감 포르노(Inspiration Porn)'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장애인의 일상이나 극복 서사를 비장애인의 감동을 위한 도구로 소비하는 미디어 재현 방식을 비판하는 용어입니다. 호주의 장애인 운동가 스텔라 영(Stella Young)이 2012년 제안한 이 개념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문제삼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며 특히 씁쓸했던 장면은 윌이 죽음을 선택한 뒤 루이자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기는 결말이었습니다. 윌의 부유한 집안 배경은 그가 스위스로 갈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제공했고, 심지어 죽음 이후에도 루이자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자본을 남겼습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이에 대해 "신체적 결함을 가진 상류층 남성의 희생을 통한 평범한 여성의 신분 상승이라는 고전적 서사"라고 비판했습니다(출처: The Guardian). 만약 윌이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청년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루이자가 윌보다 훨씬 부유한 배경이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그려졌을까요. 저는 이러한 질문들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회피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계급적 우위가 만들어낸 선택의 자유를 마치 보편적 권리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발표한 "대중매체 속 장애인 묘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미디어는 장애인을 재현할 때 다음 사항을 유념해야 합니다.
- 장애인을 동정이나 영감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묘사할 것
- 장애를 개인의 비극이 아닌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할 것
- 장애인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능성을 보여줄 것
<미비포유>는 이 세 가지 기준 모두에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는 한동안 윌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냥 살아요(Just live)." 자신은 삶을 포기하면서 상대에게는 삶을 강요하는 이 역설적인 문장이 이 영화의 본질을 압축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윌은 루이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선택을 존엄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나쁜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에밀리아 클라크와 샘 클라플린의 연기는 훌륭했고, 감정선을 건드리는 연출도 효과적이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영화를 소비할 때 조금 더 비판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윌의 선택을 존중하되, 그 선택이 만들어진 사회적 맥락을 함께 질문해야 합니다. 장애인의 삶이 비극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으로 재현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미비포유>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AF%B8%20%EB%B9%84%ED%8F%AC%20%EC%9C%A0, https://www.youtube.com/watch?v=_5pHS84txCQ, The Guardian: "Me Before You: Why disability advocates are protesting the film", Not Dead Yet (NDY) Official Statement, The Hollywood Reporter Review: "Me Before You: Film Review", RogerEbert.com (Christy Lemire): "Me Before You",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대중매체 속 장애인 묘사 가이드라인 및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