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5월, 저는 영화관에서 완전히 예상치 못한 경험을 했습니다. 포스터만 보고는 '그냥 흔한 코미디 범죄물이겠거니' 싶었던 <끝까지 간다>였는데, 막상 111분 내내 제 심장은 쥐어짜이듯 조여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죠. 이 영화는 단순한 장르 오락물이 아니라, 한국형 스릴러가 도달할 수 있는 리듬감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었다는 것을요. 칸 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이라는 타이틀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뺑소니 사고로 시작된 끝없는 추락, 그 서스펜스의 설계
영화는 주인공 고건수(이선균)가 어머니 장례식 날 뺑소니 사고를 저지르면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뺑소니(hit-and-run)'란 교통사고 후 피해자를 구호하지 않고 도주하는 범죄 행위를 의미합니다. 건수는 경찰 내사와 이혼 통보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우발적으로 사람을 치게 되고, 급박한 판단 끝에 시신을 어머니의 관 속에 숨기는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저는 이 초반부 전개를 보며 묘한 공감대를 느꼈습니다. 물론 그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인생이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을 때 인간이 느끼는 그 절박함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감정이니까요. 특히 시신을 관에 숨기는 장면에서 군인 장난감을 리모컨으로 조종해 끌어오는 설정은 기발하면서도 처절했습니다. 관객은 이 순간 건수와 함께 숨을 죽이고, 그가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갈지 손에 땀을 쥐게 됩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제작 노트에 따르면, 김성훈 감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에서 영감을 받아 "절대 들키지 않는 시신 은닉"이라는 설정을 구상했다고 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초반 30분은 관객에게 "과연 이 사람이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영화 전체의 서스펜스를 견인하는 엔진 역할을 합니다.
끝까지 간다 속 박창민이라는 압도적 빌런, 그리고 장르의 전복
영화 중반부, 정체불명의 목격자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은 건수가 쌓아 올린 위태로운 평화를 단숨에 무너뜨립니다. 그 목격자의 정체는 바로 박창민(조진웅)이라는 경찰입니다. 여기서 '빌런(villain)'이란 서사 구조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역을 의미하는데, 박창민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건수보다 훨씬 거대하고 조직적인 악의 실체로 그려집니다. 조진웅 배우가 경찰서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와 건수를 한 대 후려치는 장면은, 제가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강렬한 빌런의 등장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박창민은 마약 밀매, 비자금 조성, 살인 교사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른 부패 경찰이면서도, 동료들에게는 은인으로 통하는 이중적 인물입니다. 씨네21 주성철 평론가는 박창민을 "서사의 예측 가능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존재"로 분석했습니다(출처: 씨네21). 관객은 박창민의 등장과 함께 "이 싸움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서늘한 긴장감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특히 화장실 격투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물고문을 당하는 건수의 모습은 처절함 그 자체였죠. 이 장면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두 인물 간의 힘의 불균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연출이었습니다. 김성훈 감독은 한국영상자료원 인터뷰에서 "화려한 액션 대신 처절하게 진짜 싸우는 모습을 원했다"고 밝혔는데, 그 의도가 정확히 전달된 셈입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건수와 창민의 대결은 육체적 충돌로 치닫습니다. 저수지에서의 자동차 폭발 장면, 아파트 안에서의 사투 등은 시각적 타격감이 뛰어났지만, 솔직히 초반부의 기발한 서스펜스에 비하면 다소 전형적인 액션물의 결말로 흐른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한국형 스릴러의 성취와 한계, 그 이후의 질문
<끝까지 간다>는 전국 34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 중국·프랑스·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리메이크되었습니다. 김성훈 감독은 이 작품으로 대종상 감독상, 청룡영화상 각본상 등을 수상하며 '꺼진 감독도 다시 보자'는 우스갯소리를 낳았죠.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며 한국 장르 영화의 세련된 성취를 체감했습니다. 하지만 비평적 시각에서 보면, 이 영화는 '우연의 일치'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습니다. 건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발생하는 기막힌 우연들, 박창민이 건수의 모든 동선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설정 등은 서사의 개연성보다는 장르적 쾌감을 위해 희생된 지점들입니다. 학술지 논문에서도 "장르의 문법을 비트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문법을 마무리하는 방식은 관습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영화의 엔딩에서 건수는 박창민이 숨겨둔 거대한 비자금을 발견합니다. 돈가방을 마주한 그의 표정은 영화 제목처럼 그가 앞으로도 계속 '끝까지 가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궁금했습니다. 건수는 과연 그 돈으로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을까요, 아니면 박창민 같은 괴물이 되어버렸을까요? 이 씁쓸한 뒷맛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끝까지 간다>는 분명 한국 범죄 스릴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장점을 집대성한 작품입니다. 111분이라는 시간을 순식간에 삭제해 버리는 리듬감, 이선균과 조진웅의 압도적인 연기 앙상블, 그리고 긴장과 웃음을 절묘하게 배합한 연출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서사 구조의 일부 편의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비루한 생존 본능을 이토록 유쾌하면서도 서늘하게 그려낸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 우리 내면에 도사린 부조리함을 직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전히 스릴러 장르의 클래식으로 남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81%9D%EA%B9%8C%EC%A7%80%20%EA%B0%84%EB%8B%A4, https://namu.wiki/w/%EB%81%9D%EA%B9%8C%EC%A7%80%20%EA%B0%84%EB%8B%A4/%EC%A4%84%EA%B1%B0%EB%A6%AC, https://www.youtube.com/watch?v=jc-kKX1UERA, 씨네21 (Cine21): "[비평] <끝까지 간다>, 팽팽한 리듬이 만드는 서스펜스의 미학" - 주성철 기자 평론 (2014.05) | http://www.cine21.com, 맥스무비 (MaxMovie): "악인과 악인의 충돌, <끝까지 간다> 캐릭터와 공간 분석" - 조현주 기자 (2014.05) | http://www.maxmovie.com, 영화진흥위원회 (KOFIC): <끝까지 간다> 공식 제작 노트 및 한국 스릴러 영화의 산업적 영향력 리포트 | http://www.kobis.or.kr, 한국영상자료원 (KOFA): 김성훈 감독 인터뷰 - "장르의 규칙을 뒤트는 쾌감에 대하여" 아카이브 | http://www.koreafilm.or.kr, 학술지 논문 (RISS): "한국 범죄 스릴러 영화의 서사 구조와 관객의 심리적 거리두기: <끝까지 간다>를 중심으로" - 관련 사례 분석 참조 | http://www.riss.kr